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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커피, 튀르크 커피 또는 터키시 커피

커피의 이모저모

by 커피 마시는 다람쥐 2025. 9. 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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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커피

튀르키예 커피는 커피 콩을 볶고 잘게 간 후에 제즈베(Cezve)라는 커피 주전자에 직접 끓여낸다. 그 후에 기호에 맞게 설탕을 타서 마시는 커피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튀르키예의 가장 오래된 커피는 15세기 예멘에서 왔다. 오스만 제국 중반기에 처음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튀르키예인들은 일상적으로 커피를 마시지만, 튀르키예의 전통 혼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튀르키예의 커피 조리법은 여타 커피와 다르다. 일반적인 드립방식이 볶은 원두를 갈아 드립퍼에 넣고, 그 위로 뜨거운 물을 흘려 아랫쪽으로 우리는 것과 달리, 튀르키예의 커피는 조그만 냄비에 커피가루와 설탕, 물을 넣고 숯불위에서 끓여내고 있다. 커피 가루의 양과, 설탕의 양, 물의 양, 숯불의 세기나 끓이는 시간 등 수많은 변수로 인하여 튀르키예의 커피는 그 맛이 무척이나 다양하고 또 어려워, 커피를 잘 끓이는 사람은 장인의 대접을 받는다고도 한다.

 

빈 카페하우스에서 내는 모카(Mokka)는 튀르키예 커피와 비슷한 진한 블랙 커피이다. 모카가 간혹 "에스프레소"라 번역되기도 하지만, 빈 카페하우스 문화가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받은 만큼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보다는 튀르키예 커피에 가까우며, 이탈리아 커피 가운데는 룽고와 유사하다. (출처 : 위키백과)

 

튀르크 커피(터키시 커피)

튀르크 커피(Türk kahvesi) 또는 터키시 커피(Turkish coffee)란 튀르키예에서 유래한 달임식 커피를 말하며 넓게는 달임 커피(decoction coffee) 전부를 총칭하는 말이다. 제즈베로 달이는 것이 좁은 의미의 튀르키예 커피라면 '커피의 원조'라 할 때는 제즈베 커피가 아닌 달임 커피를 의미한다.

 

'튀르크 커피' 또는 '터키시 커피'란 튀르키예의 관점에서 튀르키예 식의 커피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이를 그리스와 키프로스, 그리고 보스니아에서는 각각 자국식 명칭으로 부른다. 18~19세기에 이슬람에서 튀르키예를 거쳐 유럽 고위층들에게 퍼져나갔다. 이때 다양한 이름도 함께 생겼는데 일단 원조를 찾아보면 이슬람이나 튀르키예가 맞다. 세계 최초의 카페도 오스만 제국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리스, 키프로스, 보스니아에 커피가 전파된 시기도 오스만의 지배 시기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그리스에서도 오 투르키코스 카페스, 즉"튀르키예 커피"로 불렸다. 하지만 1974년 키프로스 전쟁 당시 군사독재 정권이 극단적인 민족주의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때 최초로 커피를 만든 건 그리스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 커피라는 말이 생겼다. 이후 그리스 본토 커피 회사들의 애국 마케팅 전략으로 사람들의 인식도 1980년대 이후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어느 옛 그리스 영화에는 한 신사가 카페에서 "튀르키예 커피"를 주문하자 주인 이외에 일동 모두가 "그리스!" 라고 강조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국제적으로 커피는 아라비아 쪽이나 북아프리카 쪽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그리스인이 만들었다는 주장은 국제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 고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된 이름도 영어로도 터키쉬 커피다. 그리스에서 항의했지만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디어 믹스 중에선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에서 나온 린 민메이의 영상으로 부르는 노래 "은빛 달,붉은 달"에서도 "토루코 코히(터키쉬 커피) 향기에 취해...."라는 가사가 나올 정도로 해외에선 주로 터키쉬 커피가 압도적으로 알려져있다.

 

커피의 시초

물에 가루를 넣고 끓인다는 지극히 간단한 원리의 추출법으로, 달임커피라고도 한다. 100여 년 전만 해도 달임식 외엔 별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아시아건 유럽이건 북미건 중남미건 가장 대중적인 방식이었던 만큼 온갖 설비가 추가된 현재도 이 방식을 고수하는 지역이 흔하다. 특히 지갑 얇은 제3세계에서는 준비 비용이 저렴한 것도 장점으로 작용하며 유지비용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기계가 아닌 드립 커피나 모카포트도 필터와 가스켓 등 교체를 요구하는 소모품이 있지만 달임커피는 냄비만 멀쩡하면 된다. 이후의 수많은 커피 추출 방법은 달임 커피를 응용한 것이다.

튀르키예 커피에서 물의 끓는점을 상승시켜 빠르게 우려내면 모카포트가 된다. 튀르키예 커피는 불과 끓는 물이 개방되어 있었는데 보일러와 전용 가스켓으로 물을 가두고 기압을 올려 끓는점을 상승시켰다.이렇게 물은 100도에서 끓지 않고 더 높은 온도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이 고압고온의 물을 단숨에 커피 가루에 통과시켜 커피를 추출한다.
모래나 화덕 없이 인덕션을 사용하면 불 조절 없이 가장 맛있게 빠르게 할수있다. 튀르키예 내에서는 인덕션전용 제즈베도 판매하고 있다

100도에서 약간 식은 온수로 우려내면 프렌치 프레스 커피가 된다. 18세기 유럽으로 전해진 튀르키예 커피는 처음에는 튀르키예식으로 제즈베와 이브릭을 사용해서 직화로 팔팔 끓여서 우렸지만 커피를 끓이면 제대로 타이밍을 조절하지 못할 경우 향이 날아가고 맛이 강해지기 때문에 이브릭을 은이나 도자기로 만든 다음, 살짝 식혀서 90-95도 정도의 뜨거운 물과 커피를 이브릭에 따로 담고 우려내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커피가 다 우려지면 찬물을 조금 추가하는데 이렇게 하면 커피가 마시기 좋은 온도로 식고 앙금이 가라앉는 효과가 있다. 18세기 중엽에는 미분을 완전히 걸러내기 위해 리넨재질의 양말과 스타킹에 커피를 담아 우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프랑스식 커피라고 불렀고 이것에서 더 발전한 게 프렌치프레스다.

미분처리문제로 필터로 끓인 커피를 걸러내면 드립 커피가 된다. 커피 발전사에서 흔하게 알려진 스타킹과 천으로 걸러내는 방식이 바로 원시적인 드립 커피다. 원래 뜨거운 튀르키예 커피를 그대로 걸러내다가 멜리타 여사가 전용 장비를 개발하면서 널리 퍼졌다.

 

튀르키예 커피의 변천사
오스만 제국에 커피는 예멘을 통하여 유입되었다. 이미 당시 아라비아반도에는 메카에 수십개의 커피하우스가 들어설 정도로 커피가 보편적이었고 메카 성지순례를 다녀온 오스만인 무슬림들을 통해서 커피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으나 오스만 제국이 예멘을 정복하고 커피 재배지를 통치하기 시작한 후 커피는 오스만 제국 권역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1543년 예멘 태수 외즈데미르 파샤가 임기를 마치고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좋아하던 커피 원두를 가지고 가면서 커피는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10년 후인 1554년에 이스탄불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개업하면서 일반에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최초의 튀르키예 커피는 카흐베 카자느(Kahve kazanı, 커피솥)라고 불리는 내부에 주석을 코팅한 구리재질의 거대한 솥으로 끓였다. 당시에는 아직 핸드밀 같은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주철이나 구리로 만든 프라이팬에 생두를 볶고 소우단(Soğudan, 식힘통)이라고 불리는 나무통에서 볶아진 원두를 식힌 다음 커피 절구에 넣고 빻은 다음 밀가루용 채에 쳐서 고운 가루만 모아서 사용했다. 1552년 메흐메트 황자의 할례식과 잔치를 묘사한 책인 Sûrnâme-i İntizâm에서 커피하우스를 묘사한 그림을 보면 커피를 끓인 솥에서 커피집 주인이 국자로 커피를 떠서 중국산 청화백자에 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가 16세기 후반에 이르면 귀윔과 이브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브릭은 목이 길쭉한 형태의 주전자로 본래 세수대야와 한 세트로 구성되어 이슬람 예배 전에 세정의식을 하거나 손님이 오면 식사하기 전 손을 씻게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던 도구였으나 아랍권의 달라흐의 영향으로 오스만 제국에서도 커피를 끓이는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실 솥으로 끓이는 커피는 맛도 떨어지고 국자로 퍼담을 때 커피가 지저분하게 묻는 단점이 있어서 이런 식으로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후반의 기록들을 보면 금속공들이 구리, 황동, 은으로 커피용 귀윔과 이브릭을 만들어 팔았다고 전한다. 이 귀윔과 이브릭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솥은 커피하우스에서 뜨거운 물을 끓이거나 신선한 물을 보관하는 목적으로 바뀌었다. 이는 1656년 이스탄불을 여행한 프랑스 작가 장 테베노의 여행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당대의 풍속화나 유럽인들이 그린 풍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브릭으로 커피를 끓이던 시절에는 거대한 이브릭에다가 한꺼번에 커피를 끓인 다음 손님에게 내올 때는 보다 작고 예쁜 서빙용 주전자에 옮겨담아 내왔다. 당시의 서빙용 이브릭 유물들을 보면 당대 오스만 제국의 예술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 서빙용 이브릭을 사용하는 풍습은 당시 커피가 서유럽권으로 전해지면서 함께 넘어갔고 오스만 제국 양식의 영향을 받은 아라베스크 문양이나 꽃무늬가 가득한 화려한 커피포트가 만들어졌다. 이 유행은 유럽에서는 20세기 초반까지도 이어졌다.

1720년 튤립 시대의 파디샤 아흐메트 3세의 아들들의 할례식을 묘사한 Sûrnâme-i Vehbi에서도 당시 사람들이 이브릭에 커피를 끓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커피를 대량으로 로스팅하고 시중에 판매하는 상인들이 등장하고 핸드밀이 발명되어 일반 소비자들이 소량의 원두를 필요할 때마다 구입해서 직접 원두를 갈고 커피를 끓일 수 있게 되자 더 작은 커피주전자가 필요해졌는데 이때 발명된 물건이 제즈베(Cezve)이다. 제즈베는 아랍어로 '한 모금의 물'을 의미하는 자즈와에서 비롯된 단어로 튀르키예 커피 1잔(80ml 정도)에서 최대 6잔(400ml) 정도를 준비할 수 있는 작은 냄비를 의미한다. 이전의 이브릭들은 최소 1리터 이상의 용량을 자랑했던 만큼 확실히 크기가 작아졌다. 1763-1764년 사이에 이스탄불과 이즈미르의 스웨덴 대사관에서 통역사로 근무한 이냐시우스 도손의 책에는 당시에 튀르키예 커피를 제즈베에서 끓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제즈베가 보편화되자 기존의 커피 이브릭은 끓는 물을 담는 보조용도로 전락했고(이전의 커피 솥처럼)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유행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커피 위에 뜨는 거품인 크레마를 중요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는 크레마같은거 신경쓰지 않고 그냥 팔팔 끓여 마셨다.

초창기의 제즈베에는 뚜껑이 달려 있었다. 당시에는 장작불에 바로 이브릭이나 제즈베를 올려놓고 끓였기 때문에 나뭇재가 날려 커피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뚜껑이 있어야 했으며 잡을 때 손을 데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의 제즈베보다 훨씬 더 긴 접이식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엽, 숯불을 태운 재를 사용하거나 알콜램프로 끓이는 방법이 보편화되면서 제즈베의 뚜껑은 사라지고, 손잡이는 보다 짧아져서 오늘날에 이른다.

한편 커피를 마시는 잔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초창기에는 중국에서 수입한 청화백자를 최고로 쳤으며 서민들은 경덕진 청화백자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치니잔을 사용했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커피잔을 맨손으로 잡는 것은 품위없다는 풍조가 돌면서 봉투(Zarf)라고 불리는 은, 황동, 구리재질의 화려한 장식을 한 커버를 쓰는 것이 상류계급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이르면 서구화의 영향으로 세브르 자기를 비롯한 서유럽산 자기가 오스만 제국에서도 유행했고 손잡이 달린 유럽식 커피잔이 쓰이기 시작해서 오늘날에 이른다. 한편 옛 오스만 제국의 커피 문화가 남아있는 보스니아나 아랍권에서는 여전히 손잡이 없는 커피잔을 쓰는데 보스니아인들은 손잡이 없는 커피잔을 쓰는 이유로 잔을 잡을 때 엄지와 검지가 자연스레 초승달 모양을 만들게 되고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은 무슬림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문화적 상징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상징은 정작 튀르키예인들에게는 없어서 흥미로운 점이다.(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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